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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공급망 투명성 법’...기업의 인권존중과 ESG에 대한 유럽의 또다른 대답

정현찬2023-01-11

ESG 이미지유럽은 ‘공급망 실사 의무화 법’을 차례로 내고 있다. 공급망 실사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인권·환경·지배구조에 대한 공급망 실사를 하도록 하는 규제법이다.

지난 2월 23일 공개된 유럽연합의 실사법은 '공급망'이라는 표지를 법명에서 제외하고 '지속가능성 실사법'으로 발표됐다. 프랑스가 '실사의무화법'을 2017년에 최초로 도입한데 이어, 독일, 노르웨이가 차례로 실사법을 통과시켰다. 노르웨이는 환경 부분을, 독일은 환경이지만 기후위기를 실사범위에 포함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내부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 권고만 담을 뿐 지배구조는 실사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이에 발맞춰 산업부의 K-ESG, 환경부의 K-Taxonomy 등 각 부처에서 ESG 경영 및 정보공시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ESG 정책 및 제도와 주요국의 실사 의무화는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국의 사례는 좋은 참고 대상이 될 것이다.

EU와 독일의 실사법안은 언론을 통해 국내에 많이 소개됐다. 노르웨이의 투명성 법은 두 사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다. 투명성 법은 역시 기업과 인권 차원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으므로, 국내 ESG 정책과 입법 사례로 소개한다.

노르웨이의 투명성 법…넓은 적용 범위가 특징

노르웨이는 작년 4월 ‘투명성 법’이라는 법안을 발표했다. 법안은 발의된 지 2개월 만에 노르웨이 의회를 통과했다.

투명성 법의 목적은 “기본적 인권과 양질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업의 인권존중을 증진하고, 기업이 어떻게 기본적 인권과 양질의 노동조건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대처하는 지에 대한 정보접근권을 보장(법 제1조)”하는 데 있다.

노르웨이의 실사법은 적용 범위가 매우 넓다는 특징이 있다.

투명성 법은 모든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도 적용대상으로 삼았다. 해당 법은 적용대상을 대기업(large enterprises)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대기업의 정의가 매우 넓어 통상의 중소기업도 모두 포섭한다고 볼 수 있다.

투명성 법 이행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은 총 8800개의 기업이 적용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2017년 제정된 프랑스의 실사의무화법은 약 200~300곳이 의무대상 기업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기업이란 노르웨이 회계법 1-5조에 해당하는 기업, 혹은 회계서류상 아래 조건 중 2개 이상을 충족하는 기업을 말한다 (법 제3조).

  • 매출: 7000만 크로네 (95억 2000만 원)

  • 총자산: 3500만 크로네 (47억 6000만 원)

  • 회계연도의 평균 종업원 수: 정규직 50명 이상

독일 실사법은 의무기업의 실사의무 범위를 1차 공급망에 한정한다. 노르웨이 투명성 법은 이와 달리, 공급망의 범위를 N차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공급망으로 규정해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의 적용범위를 반영한 것이 고무적이다.

노르웨이 투명성 법이 노르웨이 소재 기업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 내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르웨이에 세금을 부과해야하는 외국기업에도 해당하는 만큼(법 제2조), 국내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게도 위 요건을 갖출 경우, 의무기업이 될 수 있다.

투명성 법이 부과하는 의무…정보접근권과 정보공시 절차

노르웨이 투명성 법의 제4조와 5조는 기업의 실사의무에 관한 것으로, 실사 방식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하고 있다.

투명성 법은 기업에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고 정보를 공시할 의무를 부여한다. 이 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서면으로 의무기업에게 (기본적 인권과 양질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제적·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권리(법 제6조)를 규정했다.

그러나 무조건 정보접근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조건에 따라 기업은 이러한 정보공개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할 수 있는 요건은 다음과 같다 (법 제6조 2항).

a) 요청과 관련된 사항을 파악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경우

b) 요청이 명백하게 비합리적인 경우

c) 요청된 정보가 개인의 사적인 문제에 관한 것인 경우

d) 요청된 정보가 기술장치 또는 생산절차에 관한 것이거나 영업상의 또는 상업적인 사안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

법은 기업이 인지한 기본적 인권에의 실제 부정적 영향에 대한 정보접근권은 거부할 수 있는 요건과 무관하게 보장될 수 있음을 함께 밝히고 있다(법 제6조 3항). 이 점은 인권침해 피해자(권리자)가 본인의 피해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기업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투명성 법 제7조에는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절차가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정보요청자의 정보접근권이 구체적으로 보장되며, 기업이 이를 위반할 경우 행정벌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정보 공개 요청을 수취한 이후 최대 3주를 초과하지 않는 합리적인 시간 내에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만약 요청된 정보의 분량과 유형 때문에 3주 내에 제공하는 것이 과도하게 부담이 되는 경우는 (정보 공개를 수취한 이후) 두 달 내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기업이 반드시 정보 요청자에게 요청을 수취한 날부터 3주 내에 기한 연장 이유와 언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지 설명해야만 한다.

기업이 정보요청을 거부할 경우에는 그러한 거부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항을 언급하고 거부의 상세한 사유를 요구할 권리와 시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의제기절차와 시한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정보요청자는 정보요청이 거부된 경우, 기업으로부터 정보요청이 기각 또는 거부 되었음을 통지 받은 후 3주 내에 거부 이유에 대한 더욱 자세한 사유서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기업은 거부 이유에 대한 추가 사유서 요청을 수취한 후 늦어도 3주 내에 서면으로 사유서를 제공해야 한다.

투명성 법의 시사점…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투명성 법의 정보 접근권이나 요청권은 EU, 독일, 프랑스의 실사법에서는 상세한 절차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투명성 법은 법의 적용 범위도 넓을 뿐더러, 피해자(권리자)가 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권한을 강력하게 보장했다.

노르웨이가 강력한 실사법을 도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민간에서의 오랜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피해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 보호에 관계된 정부 기관이 담당 부처를 맡았던 점을 꼽을 수 있다.

노르웨이 투명성 법은 시민사회 내에서 공론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친 후 법제화 됐다. 2019년 노르웨이 의회에서는 이러한 시민사회에서의 요구에 힘입어 노르웨이 정부에 기업 공급망에 관한 정보 공개 법안 마련과 검토를 요청했다.

소관부처는 아동가족부(Ministry of Children and Equality)로 했고, 해당 부처에서는 윤리정보위원회(Ethics Information Committee)를 구성해 정보공개의무(the Duty to Disclose)와 (기업이 보유한) 정보에 대한 알권리 (the Right to Information) 등을 법률로 규정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도록 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이행원칙)은 국제 연성규범으로서 기업의 인권존중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 to Respect)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행원칙이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다.

이행원칙과 인권실사가 공급망을 거듭 강조하는 까닭은 전 세계에서 사업활동을 하는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다국적 기업은 공급망 내 인권실사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국적 기업은 국가 경계를 오가며 끊임없이 개도국의 법적 공백을 이용해서, 인권존중책임을 회피한 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국내 법제 어디에도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약 인권정책기본법이 제정된다면 국내에서도 기업 실사의무화법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기업의 사업활동을 비롯한 국내외 공급망 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피해에 대해 적극적인 권리구제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노르웨이 투명성 법의 사례를 참고할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 IMPACT ON(임팩트온)(http://www.impact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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